[기타][그레이스 칼럼 10] 이태원에서 잃은 젊은 영혼들을 위하여

2022-11-10

사진 : 지난 국가애도기간 중 문화의집에 마련했던 추모공간


353명(사망 156명, 부상 197명)의 희생자를 낳은 이태원 참사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무거운 마음에 글쓰기를 며칠간 망설였다. 그럼에도 이번 참사를 분명하게 되짚고 기억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사회적 책무라는 생각에 어렵사리 다잡고 글을 시작한다.

 

2003년 내 나이 서른 초반 캐나다에 갔다. 익숙해지려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두렵다고 느껴온 것들과 마주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떠났다. 낯선 곳의 생활은 초겨울 시린 바람같이 생경했다. 말부터 떼야 하니 미리 등록해둔 어학원을 다니며 여러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사귀며 어울렸다. 그때가 9월이었으니 외국생활에서의 가장 가까운 첫번째 빅이벤트는 단연코 10월 31일 핼러윈 데이였다. 아메리칸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하는 건 처음이었고, 어린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을 외치며 과자를 내놓으라는 귀여운 협박을 하는 문화도 그때 처음 알았던 나는 괜히 덩달아 들떴었다. 생애 처음 맞이하는 핼러윈 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나는 종종 가던 캔싱턴마켓 코스튬샵에서 유니크한 소품들을 주섬주섬 사모았다. 해골이 그려진 팔토시와 레이스숏치마를 사들였고, 무엇보다도 나의 아바타를 상징할 인형을 만들기로 결심하며 매일 밤 한 땀 한 땀 꿰매어 귀신같은 인형을 당일 새벽까지 눈 비비며 완성했다. 평소보다 더 이른 아침 눈을 떠서 코스튬을 계획대로 차려입고 나의 아바타 인형과 함께 학원을 향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버스 안 공기가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나와는 다르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슬슬 부끄러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알았다. 사람들은 일과가 끝난 후 변신을 시작하고 핼러윈 파티를 즐긴다는 걸. 부끄러움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지만 하루만 잘 넘기자고 생각했다. 다행히 하루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학원이 끝난 후 페이스페인팅까지 마치고 클럽에 가서 나의 아바타 인형을 들고 연신 춤추며 놀았다. 어떻게 그렇게 놀 수 있었을까. 지금이라면 죽었다 깨나도 못했을 일이고 그것도 한국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학연, 지연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문화 속에서 나는 얼마든지 용감해질 수 있었다. 물론 떠오르는 기억이 있긴 하다. 중학교 시절 학교축제의 피날레는 가장행렬이었고, 나는 그 행렬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엄마의 화장품과 옷으로 잔뜩 치장한 채 말이다. 아마도 내 안의 변신 욕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나고 내 나이도 꼰대 나이로 접어든 어느 해, 우연히 핼러윈 데이가 한창인 시각 홍대 앞을 지나다 마주친 풍경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간호사부터 세일러문까지 그 옛날 본토 언저리에서도 보지 못했던 강도 높은 코스프레가 눈 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가 가능하다니 시대가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했고 십여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지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정착된 이벤트가 되었다. 핼러윈 데이는 어떠한가. 곧 있을 빼빼로데이나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등등 소위 말하는 ‘ㅇㅇ데이’가 자본주의의 틈을 탄 마케팅의 산물이라면 핼러윈 데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이벤트들을 상업성에 휘둘린 것으로만 치부하기엔 간과되는 것들이 있다. 시작이 무엇으로부터 였든 그 과정에서 자생된 문화가 있기때문이다. 핼러윈은 젊은 세대 감각과 코드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이벤트로 일본과 한국에서는 어느덧 젊은이들의 코스프레 축제가 되었다. 본토까지 가지 않더라도 떠나고 싶은 현실로부터 잠시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며 또래들과 교류할 수 있는 허락된 시간이 된 것이다. 유희의 인간으로서의 본능에 충실하고 즐거움이 분출되는 창의적 축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문화 현상을 누가 함부로 외국 문물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흥청망청 노는 소비문화로만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얼마전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남기고 종영한 국민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한 방구뽕씨의 ‘어린이는 놀아야 한다’라는 명언을 인용하자면, 젊은이는 놀아야 하고 더 나아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은 놀아야 한다. 노는 행위에서 관계도 만들어지고 창의성도, 삶의 건강한 욕구도 생겨난다. 이것은 문화사대주의도 아니고 인간 본연의 본성이자 솔직함의 발현이다. 고고한 유교주의 뒤에 숨어 얼굴을 바꾸는 기성세대의 음흉함에 비할 바가 아니란 말이다.

이태원 참사 직후, 아니 지금까지도 극우 유투버들을 포함한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은 놀다 죽었다는 둥, 참사 현장에서의 생사를 오가는 희생자들의 옷매무새까지 비하하며 고인을 모독하는 험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놀이도 인간의 기본권이다. 선진국으로 향하려는 GDP 3만 5천 달러 시대의 대한민국이라면 국민의 놀 권리도 기본권으로 보장받아야 마땅하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이미 축제가 된 문화적 현상은 존중되고 보살펴져야 할 사회적 빅이벤트란 말이다. 축제가 아니라는 둥, 뒷받침할 제도가 없다는 등의 후진적 발상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어떤 이의 됨됨이를 알고 싶다면 갑작스러운 사고나 사건에 직면했을 때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 된다. 이태원 참사 당시와 사후, 국가는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현재까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건을 축소하고 거짓 증언과 정치적 악용, 꼬리 자르기의 시도가 난무하고 있다. 있어서는 안 될 국가적 참사를 두고 추궁의 시간과 추모의 시간은 구분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세월호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평생 안고 갈 큰 빚을 또다시 짊어지게 되었다. 중앙 정부와 자치단체, 경찰청, 소방서까지 샅샅이, 실오라기 하나도 남김없이 이태원 참사를 낳게 한 모든 연관된 문제들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고 동시에 책임자들의 가차 없는 처벌이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의 혈세로 그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고 공무를 수행하게 한 이유다. 

  

이태원 희생자들을 가슴 깊이 애도하며

여러 사람들이 sns로 공유하여 접하게 된,

김의곤님의 시로 추모의 변명을 대신합니다.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

 

김의곤

 

이태원 173-7

그 좁은 골목길에

꽃조차도 놓지마라

꽃들 포개지도 마라

 

겹겹이 눌러오는 공포 속에서

뒤로...뒤로...뒤로...

꺼져가는 의식으로 붙들고 있었을

너의 마지막 절규에

꽃잎 한 장도 무거울 것 같아

차마 꽃조차도 미안하구나

 

얼마나 무서웠겠니 그 밤

얼마나 원통했겠니 그 순간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을 두고

마지막까지 안간 힘으로 버티며

살갗을 파고 들었을 네 손톱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구나

 

304명 생때같은 아이들

하늘의 별로 떠나 보낸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너희들을 허망한 죽음으로 내몬

어른들의 안일과 무책임이 부끄러워

이젠 슬픔조차도 변명마저도 차마

드러내 보일 수가 없구나

 

그 골목에 아무 것도 놓지마라!

허울 좋은 애도의 꽃도 놓지마라!

안전도 생명도 탐욕이 덮어버린 이 나라에

반성없는 어른들 끝없이 원망케 하라!

그리하여 아이들아 용서하지 마라!

참담한 부끄러움에 울고있는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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