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그레이스 칼럼 05] 노마스크 포비아

2022-05-11


코시국 3년, 마스크 포비아에서 노마스크 포비아에 빠진 지금, 

이제 잃어버린 우리의 얼굴을 되찾고 다시 얼굴 아는 관계맺기를 시작할 때다.


5월 2일부로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됐다. 실내 해제도 머지않았다는 기대감이 더해져 최근 색조화장품 업계는 보복소비가 폭발해 전년 대비 30~50% 매출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는 뉴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코로나 확산이 시작될 무렵 마스크를 쓴 동양인을 향해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는 서양인들의 혐오범죄가 잇달았고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병원균을 가진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나 중증 환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쓰는 행위는 얼굴을 가리고 무언가를 숨기려는 의도라고 생각하는 마스크 포비아에 사로잡힌 서양인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기본적으로 밑바탕에 깔려있는 인종 차별이 코로나19의 확산을 키웠고, 동양인을 향한 혐오범죄로 확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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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앞세우며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와 백신을 거부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존재했으나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마스크 포비아는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한때 마스크 대란을 겪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국, 미국, 독일, 뉴질랜드, 프랑스 등의 서양 국가들은 오미크론 정점을 지난 올 초부터 마스크 의무 착용을 차례로 해제했다. 단계적 해제를 전제하며 실외 마스크 착용부터 해제한 한국, 방송사들은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곳과 아닌 곳의 구분이 애매한 곳들의 시민 혼란을 줄이기 위해 실외로 연결된 지하철과 같은 다양한 공공 공간들을 기자가 직접 나서서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하며 예시를 보여주는 뉴스를 앞다퉈 내보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아~ 친절한 대한민국!’ 싶다가도 번거로운 생각에 ‘그럴 바에 그냥 쭉 쓰고 말지’하며 실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실외 마스크 해제 후 다행히도 확진자는 크게 늘지 않고 있고 이제 정말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인가 싶을 정도로 고요하다.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지 이제 열흘, 그런데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실내외를 구분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도 있겠으나 아직은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이유가 더 크다는 것이 시민들의 이야기다.

마스크를 깜빡하고 집을 나선 후 노마스크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마치 대중 앞에 발가벗은 것 같은 느낌 내지는 바이러스 전파자가 된 것 같은 죄의식까지 가지며 당황해했던 코로나 확산 초기, 이제 마스크 착용은 완벽하게 정착되었고 도리어 없으면 불안한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서 질문해 보자. 우리는 마스크를 벗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실내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고 바이러스의 공포가 사라지는 그때, 우리는 홀가분하게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긍정적 현상과 편리함도 있었다. 미세먼지 차단은 물론이고 감기 같은 잔병에도 쉽게 걸리지 않았다. 모든 곳에서 위생이 철저해졌으며 누군가의 소름 끼치는 재채기 세례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직장인들은 직장 상사나 동료 앞에서 애써 포커페이스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도 만끽했을 것이다. 

이제 서서히 마스크를 벗을 준비를 하며 적잖이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마스크를 쓴 채로만 만났던 사람의 노마스크를 목격하고 속으로 깜짝 놀란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두 눈만 노출된 상태에서 가졌던 인상과 얼굴 전체가 드러났을 때의 모습이 180도 달라 실망하는 경우도 있고, 의외의 더 좋은 인상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다른 경우엔 괜하게 내면의 희비가 엇갈린다. 마스크를 벗으면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게 돼서 그것이 창피하다는 한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른들도 이런 쓸데없는 희비가 교차하는데 외모에 민감한 청소년은 오죽할까. 한편 이해도 됐고 그 마음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닐진대, 어느덧 얼굴을 가리는 것이 문화가 되고 익숙해져 버려서 자기애를 상실하게 된 것은 아닌지 안타까움마저 들었다. 한 학교에서는 코로나 확산을 우려해서 식사 중에도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여 아직까지도 같은 반 친구들의 얼굴을 서로 모른다고 한다. 입을 헬쭉거리고 볼을 실룩이며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말하고 활짝 웃는 모습에서 사는 재미와 넘치는 상상력이 얼마나 많이 분출되는지, 이제 그 소중한 시간을 되찾을 때다. 노마스크 포비아를 떨치고 팬데믹 시대가 빼앗아간 우리들의 얼굴과 자존감을 되찾자. 이제 마음껏 나를 드러내고 얼굴 아는 사이가 되어 보자. 실내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는 그 날이 오면 둥글게 앉아 모두가 돌아가며 5초간 빠르게 상대의 얼굴을 그려주는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을 다 함께 해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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