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그레이스 칼럼 01] 우리가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2022-01-13


우리가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1999년, 포스트 서태지시대의 우리는 문화대통령이 사회에 던진 메시지의 여파에 꽤 긴 시간 젖어있었고 자기 결정권을 가진 ‘나’에 기꺼이 몰입했다. 그 무렵 나는 하자센터에서 일하고 있었고, 자기 주장과 개성이 강한 청소년들을 만나 잠시 동안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청소년들을 ‘특별함’으로 존중해야 하는 ‘시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어느덧 그것이 당연했다. 

 

잠시 하자를 떠났다 돌아갔을 때, 의아하게도 하자는 ‘마을’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불과 몇년 지났을뿐인데 ‘청소년’에 집중했던 스토리텔링이 맥락없이 뒤바껴 버렸다는 생각에 1999년 그때 보다 나는 더 어리둥절해 했다. 당시 조한(조한혜정, 당시 하자센터장&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은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 2006>와 <다시, 마을이다-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2007> 를 연이어 출간하며 1,000개의 ‘작은 학교’와 ‘작은 마을’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불필요한 온정주의를 배척하던 하자에서 난데없이 왜 마을이냐는 질문이 반복되었지만 하자를 떠나있던 몇년간의 공백이 나의 시대읽기 학습이 단절된 시기였음을 인정했기에 ‘마을’을 받아들이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혹자는, 자기주도형 학습과 프로젝트형 학습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신자유주의의 최첨병이 하자라며 비판했지만,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자가 시도했던 작은 학교의 실험과 마을로서의 의례, 그리고 청소년의 자립을 위해 마을 안팎으로 연결시킨 사회적 창업의 의도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0여년간의 여정을 단숨에 풀어놓을 순 없고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더욱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2022년 오늘, 조심스럽지만 단호함을 실어 말하고 싶다. 그 당시 우리의 ‘마을만들기’는 실패했다고. 근대적 의미의 가족이나 마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긴 설명 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많은 실험이 있었고, 느슨한 공동체든, 배움과 돌봄의 공동체든 우리가 상상하고 희망했던 마을의 모습은 있었고, 지금도 한결같이 소망한다. 98%의 확신과도 같았으나 채워지지 않았던 결정적인 그 2%의 결핍, 우리의 이야기가 명징한 실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때때로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 이는 어처구니 없게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바로 우리는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초연결 사회에서 글로벌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21세기의 우리가 굳이 함께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재난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3년째 ‘위드코로나’ 해야 하는 우리는,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마을이 필요하다.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멀지 않은 근거리에 존재하는 작고 실체 있는 마을이.

마을이 필요한 이유는 이 전 칼럼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참고 : 사회적 응집도와 미래세대)


그 시절 하자센터도 이루지 못했던 마을만들기, 아마 영청문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 역시 감히 말한다. 지역을 이해하려 하고 지역의 청소년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곳에 살고 있지 않으며 늘 한계에 부딪히고 피상적인 상상에 머물기 일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사는 주민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곳에서 할 일이 분명하게 있고, 그 옛날 하자도 그 일을 했을 뿐이라는 걸 겸허히 받아들이자. 

영청문을 둘러싼 지역의 청소년들이 느슨하지만 단단하고 신뢰높은 마을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영원한 이방인일진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영청문이라는 이 작은 허브를 가운데 두고 마을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걸, 2022년 새해를 시작하며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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