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자가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이제 확실히 꺾인 추세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야외 마스크 의무 착용은 해제되었고, 사람들은 실내 마스크 규제는 언제 풀릴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완전히 물러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대체로 없는 듯 하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될 것이라는 것,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지금까지는 예고에 불과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직감하고 있다. 그만큼 전례 없던 감염병 시대를 호되게 경험했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인지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매우 극단적인 긍정적, 부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대면하지 않아도 모든 접촉이 가능한 디지털전환을 서둘러 앞당겼고 동시에 일자리의 증발과 대이동을 초래하며 분야별, 업종별 명암이 천지로 엇갈리게 했다. 청소년활동과 교육은 어떠한가. 청소년들은 반 친구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학년이 바뀐 상황이 3년째 지속되었다. 장기간 마스크 착용이 또래 공동체 교육뿐만아니라 표정과 입모양으로 가능한 인지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감염병 확산에 대한 불안감이 마스크 전면 해제 시점을 두고 아직 갑론을박 대립 중이다.
비대면의 일상화에 빠르게 적응하던 중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은 키트의 형태로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 집에서도 손쉽게 체험이 가능한 교육키트들은 체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어메이징 코리아를 외칠만큼 쏟아졌다. ‘반려’라는 이름으로 설명서 대로만 따라하면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관상용 식물 미니어처, 문화예술 체험이 가능한 미술용 키트와 각종 재료가 중량대로 소분된 간편식 밀키트급 요리 프로그램, 간단한 조립으로도 원리를 배워 볼 수 있는 과학키트 등 대한민국은 교육 키트 천국이라 칭해도 무방할만큼 팬데믹 시대는 이에 가속엔진을 달아 주었다. 그 중에는 놀라운 순발력이 아닐 수 없을만큼 상당히 정교하거나 아이디얼한 웰메이드 키트들도 눈에 띤다. 농장을 가지 않아도 집에서 성충을 키워 박제까지 가능한 키트는 교재와 영상패키지로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도 인기를 끌었고, 미술이 어렵다고 느끼거나 표현이 서툰 청소년에게는 매뉴얼 대로만 따라하면 스스로 완성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결과물까지 안겨주는 문화예술 교육 키트들도 일정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집안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청소년들의 시간을 때워줄 한두시간 정도의 체험 거리들은 지난 시간동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침투하기에 용이한 적기를 만났고 그를 틈타 우후죽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제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얼마나 오랜 시간 면밀한 연구 끝에 생산된 교육키트인지, 유행처럼 번진 체험용 키트들이 청소년에게 정말 ‘유익’한 것인지, 정말로 교육적인지를 말이다. 오히려 환경과 반려, 돌봄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그린워싱은 아닌지, 주어진 틀 안에 갖힌 제한된 상상력 훈련은 아닌지, 고민없이 손쉽게 찍어낸 조악하기 이를데 없는 ‘예쁜 쓰레기’를 생산하는 체험교육 호갱이 된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모든 것이 뉴노멀일 순 없다. 노멀의 시대에서 추구했던 근원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교육에 어떻게 스며들고 반영되어야 하는지 깊이 회고하고 되돌려야 할 시점이 아닐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전적 관념이 아니더라도 결핍에서 오는 창의성에 대해 고찰하고 사고에 불을 지펴 유희를 경험케 함으로서 생각의 지평을 열어주는 체험 교육, 지구인으로서의 이해와 책임이 바탕이 된 사회적 일원으로서의 관점을 키워줄 씨앗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문화의집 또한 앞서 언급한 키트들을 더러는 개발하고 소비한 당사자로서 그 고민의 최전선에 있음을 시인한다.
청소년시설들은 저마다 직업, 미디어, 문화교류, 항공우주, 환경교육 등 타 시설과 차별화된 ‘특화 프로그램’에 주목한지 오래고, 때마침 메타버스, 음악 등의 특화시설의 개관을 앞두고 있다. 기존시설 중에는 아트전문 시설로 탈바꿈할 계획을 준비 중인 곳도 있다. 빠른 변화 또는 남들이 손대지 않은 영역의 선취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이 ‘앞선 교육’, '좋은 교육'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화프로그램 접근에 있어서 충분한 고민과 연구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얼마나 교육적 깊이에 도달하며 지속가능할지에 대해 말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교육적 효능감은 순간의 체험에서 오기보다 생각이 열리고 축적되었을때 그 힘을 발휘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공공에서 조성한 대형 직업체험 공간과 사설공간들이 왜 쏟아부은 자원 대비 교육적 효과가 단기적이고 일회성에 그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순간의 즐거움을 채우기에는 ㅇㅇ랜드 등의 놀이동산만한 곳이 없고 그로써 충분히 유익하다.
이제 청소년의 참여와 융합적 사고를 이끌어내는 체험 교육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야 할 때임을 직시하자.
그리고 질문하자. 창의성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를.
#영청문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그레이스칼럼 #키트에갇힌체험교육 #체험교육
[참고사진 : 영청문 체험활동 우수사례]
지난 9월 17일 진행된 영청문 기후축제 중 지역 어린이집과 연계하여 함께 완성한 작품과 청소년 참여 결과물




영청문 청소년 활동 우수 사례, '기투더후 축제' 다시 보기
코로나19 확진자가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이제 확실히 꺾인 추세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야외 마스크 의무 착용은 해제되었고, 사람들은 실내 마스크 규제는 언제 풀릴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완전히 물러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대체로 없는 듯 하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될 것이라는 것,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지금까지는 예고에 불과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직감하고 있다. 그만큼 전례 없던 감염병 시대를 호되게 경험했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인지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매우 극단적인 긍정적, 부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대면하지 않아도 모든 접촉이 가능한 디지털전환을 서둘러 앞당겼고 동시에 일자리의 증발과 대이동을 초래하며 분야별, 업종별 명암이 천지로 엇갈리게 했다. 청소년활동과 교육은 어떠한가. 청소년들은 반 친구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학년이 바뀐 상황이 3년째 지속되었다. 장기간 마스크 착용이 또래 공동체 교육뿐만아니라 표정과 입모양으로 가능한 인지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감염병 확산에 대한 불안감이 마스크 전면 해제 시점을 두고 아직 갑론을박 대립 중이다.
비대면의 일상화에 빠르게 적응하던 중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은 키트의 형태로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 집에서도 손쉽게 체험이 가능한 교육키트들은 체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어메이징 코리아를 외칠만큼 쏟아졌다. ‘반려’라는 이름으로 설명서 대로만 따라하면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관상용 식물 미니어처, 문화예술 체험이 가능한 미술용 키트와 각종 재료가 중량대로 소분된 간편식 밀키트급 요리 프로그램, 간단한 조립으로도 원리를 배워 볼 수 있는 과학키트 등 대한민국은 교육 키트 천국이라 칭해도 무방할만큼 팬데믹 시대는 이에 가속엔진을 달아 주었다. 그 중에는 놀라운 순발력이 아닐 수 없을만큼 상당히 정교하거나 아이디얼한 웰메이드 키트들도 눈에 띤다. 농장을 가지 않아도 집에서 성충을 키워 박제까지 가능한 키트는 교재와 영상패키지로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도 인기를 끌었고, 미술이 어렵다고 느끼거나 표현이 서툰 청소년에게는 매뉴얼 대로만 따라하면 스스로 완성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결과물까지 안겨주는 문화예술 교육 키트들도 일정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집안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청소년들의 시간을 때워줄 한두시간 정도의 체험 거리들은 지난 시간동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침투하기에 용이한 적기를 만났고 그를 틈타 우후죽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제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얼마나 오랜 시간 면밀한 연구 끝에 생산된 교육키트인지, 유행처럼 번진 체험용 키트들이 청소년에게 정말 ‘유익’한 것인지, 정말로 교육적인지를 말이다. 오히려 환경과 반려, 돌봄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그린워싱은 아닌지, 주어진 틀 안에 갖힌 제한된 상상력 훈련은 아닌지, 고민없이 손쉽게 찍어낸 조악하기 이를데 없는 ‘예쁜 쓰레기’를 생산하는 체험교육 호갱이 된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모든 것이 뉴노멀일 순 없다. 노멀의 시대에서 추구했던 근원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교육에 어떻게 스며들고 반영되어야 하는지 깊이 회고하고 되돌려야 할 시점이 아닐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전적 관념이 아니더라도 결핍에서 오는 창의성에 대해 고찰하고 사고에 불을 지펴 유희를 경험케 함으로서 생각의 지평을 열어주는 체험 교육, 지구인으로서의 이해와 책임이 바탕이 된 사회적 일원으로서의 관점을 키워줄 씨앗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문화의집 또한 앞서 언급한 키트들을 더러는 개발하고 소비한 당사자로서 그 고민의 최전선에 있음을 시인한다.
청소년시설들은 저마다 직업, 미디어, 문화교류, 항공우주, 환경교육 등 타 시설과 차별화된 ‘특화 프로그램’에 주목한지 오래고, 때마침 메타버스, 음악 등의 특화시설의 개관을 앞두고 있다. 기존시설 중에는 아트전문 시설로 탈바꿈할 계획을 준비 중인 곳도 있다. 빠른 변화 또는 남들이 손대지 않은 영역의 선취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이 ‘앞선 교육’, '좋은 교육'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화프로그램 접근에 있어서 충분한 고민과 연구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얼마나 교육적 깊이에 도달하며 지속가능할지에 대해 말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교육적 효능감은 순간의 체험에서 오기보다 생각이 열리고 축적되었을때 그 힘을 발휘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공공에서 조성한 대형 직업체험 공간과 사설공간들이 왜 쏟아부은 자원 대비 교육적 효과가 단기적이고 일회성에 그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순간의 즐거움을 채우기에는 ㅇㅇ랜드 등의 놀이동산만한 곳이 없고 그로써 충분히 유익하다.
이제 청소년의 참여와 융합적 사고를 이끌어내는 체험 교육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야 할 때임을 직시하자.
그리고 질문하자. 창의성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를.
#영청문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그레이스칼럼 #키트에갇힌체험교육 #체험교육
[참고사진 : 영청문 체험활동 우수사례]
지난 9월 17일 진행된 영청문 기후축제 중 지역 어린이집과 연계하여 함께 완성한 작품과 청소년 참여 결과물
영청문 청소년 활동 우수 사례, '기투더후 축제' 다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