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칼럼은 문화의집에서의 3년을 돌아보며 반성과 회고, 오해와 음해를 넘어 기대와 요구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사진 : 지난 봄 외벽 공사를 마친 직후, 파란 하늘과 구름이 멋지게 드리운 문화의집의 자태를 놓칠 수 없어 담았던 사진
이달 말이면 문화의집에 온 지 꼬박 3년이 된다. 하자센터를 거쳐 사회적기업과 대안학교를 운영하다 오랜만에 차오르는 의욕을 안고 3년 전 문화의집에 착륙했다. 좌충우돌과 우여곡절의 첫해를 보냈고, 문화의집의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으로서의 두 번째 해를 지나 마지막 해는 예기치 않은 피날레, 환란 그 자체였다.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생활의 힘, 즉 ‘생활力’을 기르는 데에 요리만 한 게 없다. 요리는 오감을 키우며 자립으로 직결시키는 기초소양교육 중 으뜸이다. 지난 날 청소년 요리대안학교를 운영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의집에 와서 가장 먼저 눈에 띄게 한 일이 부엌을 만드는 일이었다. 마침 빈 공간이 하나 있었고, 전체적으로 문화의집의 공간들을 더불어 개선하고 재배치한다면 청소년과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과 다이나믹이 확장될 수 있었기에 곧장 공간개선에 돌입했다. 갑작스레 맞게 된 펜데믹으로 문화의집의 기약없는 휴관 조치가 시작되었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던 그때, 공간 개선을 하기엔 오히려 절호의 시기이기도 했다. 작정한 일은 빨리 추진하는 편이라 여기저기 의견을 구하고 공간의 컨디션에 맞춰 도면을 만들고 구청과 예산을 협의했다. 민간경상사업비에 해당하는 자본지출은 전년도에 예산이 잡혀 있지 않으면 추경할 수 없기에, 자체운영금과 시설비를 쪼개어 예산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구의 승인 없이 공간을 개선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구는 본래 그 공간에 아지트사업(서울시에서 시설비를 지원하는 청소년자율공간지원사업)을 염두 했다는 것, 그러나 이미 요리스튜디오는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연초 담당공무원들도 모두 바뀐 상태, 이 전의 계획을 명확히 인계받지 못한 건 그들도 매한가지였고 위탁기관이 운영하는 시설의 공간 개선이 구의 승인 사항이라는 것은 나로서는 사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렇더라도 모든 일은 담당자와 상의하면 되는 일이고 윗선으로 보고가 이루어지면 그뿐이다. 코로나로 인해 서울시 지원사업인 아지트 사업이 언제 시행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공간이 부족한 문화의집에 때마침 생긴 빈 공간을 계속 비워두기보다 휴관 중일 때를 활용하여 빠르게 요리공간으로 만들고 아지트 용도의 공간은 연중에 서울시 예산 지원이 확정되면 당시의 유스카페로 사용하던 공간을 개선하는 것으로 주무과와 상의했지만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 할많하않이다. 규정이 없어도 주무과의 관행에 따라야 하고, 위탁기관이 운영한다 해도 주무과의 방침에 앞설 수 없으며 기관장의 재량보다는 주무과의 권한이 우선한다는 것, 모든 걸 관장하는 자는 ‘관장’이 아님을 그때 처음 알았다. 모든 호통과 질타의 직격탄이 되었지만, 행정 조직의 생리를 몰랐던 건 나의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 덕에 지금의 요리스튜디오 ‘살리다(음식으로 사람을 살리는 공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건 문화의집의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문화의집에서의 첫발은 사업개편이었다. 사업을 크게 청소년문화작업장(생활, 기후, 미디어), 청소년미래기획(미래학교, 미래체험, 미래진로), 청소년자치(동아리, 청운위, 기후활동단)로 나누었다. 첫해에 곧바로 있었던 재위탁 적격심사에서 심사위원 중 한 분이 하자센터 사업을 그대로 베꼈다며 깎아내렸다는 이야기를 후문으로 들었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틀린 얘기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1999년 하자센터 오픈 당시부터 20년간 하자의 안팎에서 내가 주도했거나 함께 했던 사업들의 경험치가 문화의집의 사업 개편의 발판이 되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의 작업장 시스템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체제로 보는바, 검증된 스테디셀러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는 법이니 누구든 함부로 폄하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또한 초기부터 청소년 목적사업에 기후작업장을 만들고 청소년기후활동단을 출범하는 등 기후 환경문제에 집중했다. 문화의집 사업이 지나치게 기후 환경사업에 치우쳐있다고 혹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기후문제는 다음 세대의 미래에 대한 문제로 직결되는 만큼 당면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우리는 갈 길이 멀고 아직 한참 더 부족하다. 문화의집의 전체 사업을 펼쳐놓고 볼 때 목적사업 중 기후작업장 예산은 아직 1/10도 안 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중요한 건 예산의 비중이 아니다. 핵심은 사업을 수행하는 모든 순간들과 하다못해 작은 물품 하나를 구매할 때에도 최대한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원칙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지키는 실천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문화의집에 있던 3년간 관장으로서의 가장 큰 자책은, 청소년 사업에 대한 욕심과 포부가 컸던 것만큼 사업에 깊이 개입하였고 그러다보니 직원들을 기다려주는 일에 인색했다는 점이다. 너무 빠른 드라이브와 푸쉬는 직원들에게 분명 큰 혼란을 주었을 것이다. 직원들에게, 아니 나의 동료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진심 미안했음을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톤을 잃지 않으며 성장을 거듭한 직원들이 있었고 이제는 도리어 내가 의지하게 된 동료가 되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반면 나로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자책도 있었다. 관장이라는 직무에 정치적 판단과 처세가 필요하고 그것은 조직을 이끄는 데에 제법 크게 작용하는 역량이라는 점이다. 특히 영등포라는 지역사회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갖춘다 해도 이미 짜여진 판을 뒤집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여러 이해가 얽힌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못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제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책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다.
문화도시 기반의 청소년 활동은 꽤나 낭만적이고 설레는 비전이었다. 영등포라는 도시가 문화로 네트워킹 되고 그 위에 청소년이 안전하게 연결되는 그림이 보였다. 이는 영등포에 아파트가 많아지고, 집값이 오르고, 그 곳에 사는 구민들이 많아진다고 가능하지 않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지역으로 유입된 문화예술 창작자들과 기획자들이 문래로, 선유로, 대림으로 뻗으며 뿌리내려온 활동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영등포문화재단이 엔진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을까. 지자체장이 바뀌면 통상 재단 대표가 바뀌고 정책도 바뀌기 마련이란 것쯤은 누구나 안다. 문화의집의 위탁법인이 바뀌는 것도 그 연장선상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다만 영등포에 ‘문화꽃’이 피기도 전에 원점으로, 아니 과거로 회귀하는 일이 없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그 모든 바람의 영향을 청소년 또한 받을 수밖에 없기에 얹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문화의집의 관장으로서도 환란의 시기였던 올해에 대한 소회는 여기에 펼치기 보다 더 적절한 곳과 방법으로 정리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한마디는, 부디 문화의집이 청소년을 위한 사업을 소신있게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보장되기를, 청소년축제가 이해관계의 중심에 있는 이들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고 청소년을 위한 축제로 되돌려지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2023년부터는 새로운 법인 체제의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이 그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문화의집과 관계된 사람들과 기관들의 도움과 협력을 간곡히 부탁한다.
마지막 칼럼은 문화의집에서의 3년을 돌아보며 반성과 회고, 오해와 음해를 넘어 기대와 요구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사진 : 지난 봄 외벽 공사를 마친 직후, 파란 하늘과 구름이 멋지게 드리운 문화의집의 자태를 놓칠 수 없어 담았던 사진
이달 말이면 문화의집에 온 지 꼬박 3년이 된다. 하자센터를 거쳐 사회적기업과 대안학교를 운영하다 오랜만에 차오르는 의욕을 안고 3년 전 문화의집에 착륙했다. 좌충우돌과 우여곡절의 첫해를 보냈고, 문화의집의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으로서의 두 번째 해를 지나 마지막 해는 예기치 않은 피날레, 환란 그 자체였다.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생활의 힘, 즉 ‘생활力’을 기르는 데에 요리만 한 게 없다. 요리는 오감을 키우며 자립으로 직결시키는 기초소양교육 중 으뜸이다. 지난 날 청소년 요리대안학교를 운영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의집에 와서 가장 먼저 눈에 띄게 한 일이 부엌을 만드는 일이었다. 마침 빈 공간이 하나 있었고, 전체적으로 문화의집의 공간들을 더불어 개선하고 재배치한다면 청소년과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과 다이나믹이 확장될 수 있었기에 곧장 공간개선에 돌입했다. 갑작스레 맞게 된 펜데믹으로 문화의집의 기약없는 휴관 조치가 시작되었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던 그때, 공간 개선을 하기엔 오히려 절호의 시기이기도 했다. 작정한 일은 빨리 추진하는 편이라 여기저기 의견을 구하고 공간의 컨디션에 맞춰 도면을 만들고 구청과 예산을 협의했다. 민간경상사업비에 해당하는 자본지출은 전년도에 예산이 잡혀 있지 않으면 추경할 수 없기에, 자체운영금과 시설비를 쪼개어 예산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구의 승인 없이 공간을 개선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구는 본래 그 공간에 아지트사업(서울시에서 시설비를 지원하는 청소년자율공간지원사업)을 염두 했다는 것, 그러나 이미 요리스튜디오는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연초 담당공무원들도 모두 바뀐 상태, 이 전의 계획을 명확히 인계받지 못한 건 그들도 매한가지였고 위탁기관이 운영하는 시설의 공간 개선이 구의 승인 사항이라는 것은 나로서는 사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렇더라도 모든 일은 담당자와 상의하면 되는 일이고 윗선으로 보고가 이루어지면 그뿐이다. 코로나로 인해 서울시 지원사업인 아지트 사업이 언제 시행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공간이 부족한 문화의집에 때마침 생긴 빈 공간을 계속 비워두기보다 휴관 중일 때를 활용하여 빠르게 요리공간으로 만들고 아지트 용도의 공간은 연중에 서울시 예산 지원이 확정되면 당시의 유스카페로 사용하던 공간을 개선하는 것으로 주무과와 상의했지만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 할많하않이다. 규정이 없어도 주무과의 관행에 따라야 하고, 위탁기관이 운영한다 해도 주무과의 방침에 앞설 수 없으며 기관장의 재량보다는 주무과의 권한이 우선한다는 것, 모든 걸 관장하는 자는 ‘관장’이 아님을 그때 처음 알았다. 모든 호통과 질타의 직격탄이 되었지만, 행정 조직의 생리를 몰랐던 건 나의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 덕에 지금의 요리스튜디오 ‘살리다(음식으로 사람을 살리는 공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건 문화의집의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문화의집에서의 첫발은 사업개편이었다. 사업을 크게 청소년문화작업장(생활, 기후, 미디어), 청소년미래기획(미래학교, 미래체험, 미래진로), 청소년자치(동아리, 청운위, 기후활동단)로 나누었다. 첫해에 곧바로 있었던 재위탁 적격심사에서 심사위원 중 한 분이 하자센터 사업을 그대로 베꼈다며 깎아내렸다는 이야기를 후문으로 들었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틀린 얘기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1999년 하자센터 오픈 당시부터 20년간 하자의 안팎에서 내가 주도했거나 함께 했던 사업들의 경험치가 문화의집의 사업 개편의 발판이 되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의 작업장 시스템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체제로 보는바, 검증된 스테디셀러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는 법이니 누구든 함부로 폄하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또한 초기부터 청소년 목적사업에 기후작업장을 만들고 청소년기후활동단을 출범하는 등 기후 환경문제에 집중했다. 문화의집 사업이 지나치게 기후 환경사업에 치우쳐있다고 혹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기후문제는 다음 세대의 미래에 대한 문제로 직결되는 만큼 당면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우리는 갈 길이 멀고 아직 한참 더 부족하다. 문화의집의 전체 사업을 펼쳐놓고 볼 때 목적사업 중 기후작업장 예산은 아직 1/10도 안 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중요한 건 예산의 비중이 아니다. 핵심은 사업을 수행하는 모든 순간들과 하다못해 작은 물품 하나를 구매할 때에도 최대한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원칙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지키는 실천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문화의집에 있던 3년간 관장으로서의 가장 큰 자책은, 청소년 사업에 대한 욕심과 포부가 컸던 것만큼 사업에 깊이 개입하였고 그러다보니 직원들을 기다려주는 일에 인색했다는 점이다. 너무 빠른 드라이브와 푸쉬는 직원들에게 분명 큰 혼란을 주었을 것이다. 직원들에게, 아니 나의 동료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진심 미안했음을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톤을 잃지 않으며 성장을 거듭한 직원들이 있었고 이제는 도리어 내가 의지하게 된 동료가 되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반면 나로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자책도 있었다. 관장이라는 직무에 정치적 판단과 처세가 필요하고 그것은 조직을 이끄는 데에 제법 크게 작용하는 역량이라는 점이다. 특히 영등포라는 지역사회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갖춘다 해도 이미 짜여진 판을 뒤집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여러 이해가 얽힌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못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제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책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다.
문화도시 기반의 청소년 활동은 꽤나 낭만적이고 설레는 비전이었다. 영등포라는 도시가 문화로 네트워킹 되고 그 위에 청소년이 안전하게 연결되는 그림이 보였다. 이는 영등포에 아파트가 많아지고, 집값이 오르고, 그 곳에 사는 구민들이 많아진다고 가능하지 않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지역으로 유입된 문화예술 창작자들과 기획자들이 문래로, 선유로, 대림으로 뻗으며 뿌리내려온 활동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영등포문화재단이 엔진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을까. 지자체장이 바뀌면 통상 재단 대표가 바뀌고 정책도 바뀌기 마련이란 것쯤은 누구나 안다. 문화의집의 위탁법인이 바뀌는 것도 그 연장선상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다만 영등포에 ‘문화꽃’이 피기도 전에 원점으로, 아니 과거로 회귀하는 일이 없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그 모든 바람의 영향을 청소년 또한 받을 수밖에 없기에 얹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문화의집의 관장으로서도 환란의 시기였던 올해에 대한 소회는 여기에 펼치기 보다 더 적절한 곳과 방법으로 정리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한마디는, 부디 문화의집이 청소년을 위한 사업을 소신있게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보장되기를, 청소년축제가 이해관계의 중심에 있는 이들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고 청소년을 위한 축제로 되돌려지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2023년부터는 새로운 법인 체제의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이 그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문화의집과 관계된 사람들과 기관들의 도움과 협력을 간곡히 부탁한다.